해변에서: 그날이 오면
이 마지막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 더듬어 찾고
애써 말을 피한다.
부어오른 이 강변에서 모여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대신, 훌쩍임으로.
- T. S. 엘리엇의 「텅 빈 사람들」에서.
그날이 오면, 비로소 모든 게 보이리라. 모두를 집어삼킨 그날, 해변에서 모이게 하리라. 아무리 캄캄해도 어둠을 통해 빛을 가리키리라.
사이렌이 울렸다. 저 멀리 들리는 사이렌은 머리조차도 하얗게 울리게 한다. 대체 무슨 일일까?
난 창문을 열었다. 한밤중에 저 멀리서 빛이 반짝이며 쾅쾅 소리가 났고 집집마다 불이 켜지며 소란스러웠다. 창문을 열어보니 다들 가방을 메거나 캐리어를 끌고 저 빛의 반대로 움직였고, 일부는 후레쉬를 켜서 보일까말까한 앞을 내다봤다. 최전방에서 온 뜨거운 바람이 살에 파고들자, 한 줌의 땀이 흐르며 떨어졌다.
기억하기도 싫은 전쟁의 첫날이 떠올랐다. 하늘을 갈랐던 비행기들, 지하주차장 대피, 포탄을 맞고 죽었던 사람들. 머리가 지근거렸고 온몸이 떨렸다. 옆집 쥐새끼가 다니는 소리도 들을 만큼, 수 킬로미터 떨어진 화약 냄새, 피 냄새도 맡을 정도로 민감했다.
핸드폰에서 ‘삐- 삐-’ 소리가 귀를 찔렀다. 또 뭐야? 심장이 쿵쾅거리며 꺼내보니 재난 문자였다. ‘국민 여러분, 신속히 지하철역, 지하실, 지하주차장 등으로 즉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현재 시각 23시 47분경 북한군 미사일 차량이 대거 이동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일부 미사일들이 핵무기를 탑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늘밤 자정 0시에 미사일을 대규모 발사하니 즉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대피소, 대피소가 어디야? 아, 뉴스! TV뉴스를 트니 긴급속보가 나왔다. 보도 화면 밑에 다른 속보들과 인근 대피소 목록이 나왔다. 가장 가까운 대피소는 버스로 한 번에 간다. 좋아, 거기로 가자.
잠시 후 자료화면을 보여주며 북한 뉴스가 나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 대변인 성명! 간악한 미제침략자들과 한국 괴뢰들은 우리 공화국에 대하여 중대한 침략전쟁을 감행하였다. 이에 조선인민군 장병들은 쥐새끼 같은 놈들의 악행에 분노하여, 그 추악한 대갈통에 공화국의 핵미싸일을 발사할 것이다!”
근데 뭐 챙기지? 일단 지갑부터 꺼내자. 지갑에 2천원, 신분증, 카드. 그리고 먹을 거 뭐 있더라?
TV 자료화면에서 BBC 채널이 나오자, 동유럽 전선에서 나토(NATO)군 소식을 중계했다.
“네, 방금 한국 상황이 확인됐고요. 이제 폴란드 전선의 제임스 워터슨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워터슨 기자?”
화면이 전환되어 워터슨이 보였다. 기자의 뒤로 군 차량이 지나갔고 그 건너 군인들은 무전기로 말하고 있었다. 기자는 마이크를 쥐며 흥분했다.
“네, 여기는 폴란드입니다. 보시다시피 동쪽으로 불과 30km 지점에서 포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예 러시아군이 벨라루스군과 들어왔고요. 나토군이 쉽게-”
포탄이 날아오자, 기자와 카메라맨이 몸을 숙였다. 다행히 빗나갔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다친 곳 없어?”
“네, 없습니다!”
“와, 좆될…아니 큰일날 뻔했다!”
기자는 잠시 웃고 일어났다.
“워터슨 기자, 보도 부탁드립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아무튼 나토군이 쉽게 저 공격을 막을지는…”
아, 진짜 떨어진 줄 알았네. 십 년 감수했다. 또 뭐야. 옷. 팬티, 반바지, 반팔에다…긴팔? 긴팔 하나 챙길까? 챙기자. 에어컨 때문에 추울지도 몰라. 일단 빨리 챙겨, 빨리!
TV뉴스는 CNN의 자료화면을 보여줬다. 어느 중동 친서방 국가 대변인이 단상에서 성명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단상 앞에는 기자들이 몰렸다. 현장에서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고, 뒤에도 사람들이 빽빽했다. 그들은 국가 대표가 말하는 토씨 하나까지 집중했다. 대변인 뒤에는 중동의 지도와 주요 도시들이 나왔다. 다마스쿠스, 테헤란, 아부다비, 예루살렘. 하나같이 공격 순위가 높은 위험 지대였다.
“여기서 전투기가 발진하면 적국 수도를 타격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지만, 불바다가 될 겁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기자 하나가 손 들었다.
“대표님!”
“네.”
“인근 미군기지에 전술핵 미사일이 배치됐다던데, 사실입니까?”
순간 대변인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제가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이만 마칩니다.”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실 수 있으십니까?”
잠시 카메라 플래시 소리만 들리며 침묵. 대변인 얼굴에 주름이 졌고 입술을 삼켰다.
“아뇨, 장담 못합니다.”
대변인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기자들이 근처로 몰렸다. 뒤쪽 사람들도 시끄럽게 얘기했다. 누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지만, 대부분은 “이게 말이 돼?” “대변인 나와, 나오라고!”라며 단상에서 내려오는 그의 멱살을 잡을 거처럼 달려들다 경호원에 제지당했다.
한편 난 가방을 다 싸고 신발을 신었다. 다 됐다. 옷이랑, 지갑. 먹을 거, 마실 거. 보조배터리까지. 빠진 거 없지? 튀자!
현관을 나서자 복도에도 대피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마치 대형마트 폐점 세일 마지막날에 온 고객들마냥 북적거렸다. 다들 뛰어가는 걸 보니 이번 세일 놓치면 영영 못 산다는 걸 아는 모양새였다.
난 물건을 다 챙겨 버스를 탔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앉았다. 버스는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바깥 지붕이나 뒤에 매달린 사람들도 있었다. 버스 안은 약간의 땀냄새와 발냄새를 풍겨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다들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거나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TV를 껐던가? 썅,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다행히 에어컨은 켜져서 열대야에도 그나마 시원했다. 도로는 대부분 차들로 막혔다. 일부는 자전거, 오토바이를 타고 사이를 지나갔고, 밖은 빵빵거리는 소리와 욕지거리로 시끄러워서 창문을 올렸다. 그래도 대피소가 가까워서 다행이야.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켜자 세계 곳곳에서 핵공격이 있었다는 뉴스들이 나왔다. ‘파키스탄, 인도와 핵전쟁 선언,’ ‘이스라엘, 이란에 핵공격…‘차라리 공멸이 낫다’,’ ‘나토, 폴란드에서 전술핵 미사일 사용 결정’ 등등.
영상들을 넘기다 미국에서 스트리밍하는 걸 눌렀다. 영상 속 하늘에선 하얀 흉터와 같은 구름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고, 그곳 사람들도 서둘러 대피하려고 했다. 그 가운데 촬영자와 친구도 차에 물건을 실었다.
“야, 다 챙겼어?”
촬영자는 짐을 살폈다. 구급상자, 옷, 물, 식량.
“어, 됐어! 빠진 거 없어!”
“그럼 빨리 시동 걸고…”
촬영자가 떨어지는 핵탄두를 확대했다. 탄두는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이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 저거 설마…. 튀어!”
대피소에 도착한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뛰었다. 유튜브도 안 끄고. 사이렌이 사방에서 울렸고, 다들 대피소로 뛰었다. “국민 여러분, 즉시 대피하십시오!” “미사일 공격까지 약 1분 10초 남았습니다,” 등의 안내방송도 나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거나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부모 잃은 아이? 내 알 바 아니다. 넘어져서 깔리면? 나만 아니면 돼!
근데 앗! 핸드폰! 내 폰 떨어졌다! 잠깐 뒤를 봐도 발걸음 때문에 볼 수 없었다. 그냥 가, 가!
떨어진 핸드폰에서 스트리밍하던 일행도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을 닫지도 않고 대피소 앞에 달려갔다. 늦었다. 문은 닫혔고, 열리지 않았다. 문을 마구 두들겼다.
“씨발, 문 좀 열어줘요! 제발 열어줘요!”
“열어, 썅! 열어달라고!”
“야, 차 끌고와! 차 끌고와서 아예 문 부숴…”
순간 온 세상이 하얘졌다. 눈을 질끈 감고 빛이 약해지자 뒤를 돌았다. 저 멀리 피어오르는 버섯구름과 여기로 다가오는 폭풍이 보였다. 곧 이쪽을 덮쳐 영상이 끊겼다.
그날 이후, 세상은 멸망했다. 처음에는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대참사는 우리가 선택했다. 돌이킬 수 없었다. 동아시아, 중동, 유럽까지. 결국 세계는 파괴되었다.
다행히 어느 지역은 무사했고, 그곳은 대한민국의 강릉이었다. 그러나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조성연은 핵폭발 사진이 인쇄된 신문을 대학 로비에서 읽고 있었다. 신문 헤드라인에 ‘북한군, 핵무기 사용 결정’이라는 문구가 쓰였고, 세계 각지에서 핵공격이 있었다는 내용도 보였다. 그걸 보자 이마에 주름이 졌고 간단이 서늘해졌다. 이게 마지막 신문이었어. 그날 이후로. 우리도 곧 마지막일까? 아니면 살까?
로비에서 시민1은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어딨지? 여기쯤인데. 함 불러볼까?
“성연아! 조성연! 어디야?”
성연은 고개를 들어 시민1을 찾아봤다.
“여기야!”
“어, 민정아! 하민정!”
둘은 서로 만나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들은 웃으며 나란히 로비를 걸어갔다.
“수업 가야지.”
“맞아맞아. 오늘 종강이라 놓치면 안 돼.”
“그래. 야, 근데 너 그거 아직도 읽어?”
시민1은 신문을 가리켰다. 성연은 살짝 웃었다.
“아, 그냥.”
“어차피 다 알면서.”
“뭐, 읽을 게 있어야지.”
“그러게. 빨리 수업이나 가자!”
강릉시립대학교 로비에서 나온 성연과 시민1은 학교 전광판 앞을 지나갔다. 전광판에는 ‘2027년 8월 13일,’ ‘오늘의 방사선 수치’라는 문구와 그 밑에 ‘피폭량 45mSv/허용치 100mSv’라는 수치가 나왔다. 그 옆에는 인체도가 나와서 방사선 피폭이 몸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줬다. 구토, 기침, 어지러움, 성격 변화…
사학과 강의실에서 신해진 교수가 강의하고 있었다. 칠판에는 세계사 강연 내용이 PPT로 보였고, ‘코로나 판데믹,’ ‘긴장되는 세계,’ ‘분쟁 격화’ 등의 문구가 적혔다. 해진은 그 앞에서 일어서서 강의했다. 그날의 주제는 2020년초에 일어난 코로나 사태와 그로 인한 경제위기, 그리고 세계 각지의 분쟁 격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다들 긴장했거나 눈길을 딴 곳으로 돌렸다. 보기 싫은 거다. 이미 그 결과를 직접 겪고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이번 학기 수업은 여기서 마칠게. 다들 고생했다.”
학생들이 인사하며 강의실을 나갔다. 다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라고 말하며 나가던 와중에 성연은 남았다.
“저, 교수님!”
“왜, 성연아?”
“아쉬운 게 있어요.”
“뭔데?”
해진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성연이 말이면 잘 들어야지.
“오늘 제3차 세계대전은 안 배우나요?”
“아, 그건…”
해진은 목을 더듬고 머리를 옆으로 숙였다. 골치 아프고 생각하기 싫은데…. 그래도 세계사 내용이니 꼭 배워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어차피 다 끝장이니까 굳이 배울 필요 없을 것도 같고.
“그거야 다들 아는 거고, 학기 시작할 땐 일어날 줄도 몰랐잖아. 전쟁의 흐름도 다 모르고.”
“근데 사실 러시아 때문이잖아요?”
코로나 사태 말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후, 세계가 갈라지며 경제도 나빠졌다. 그 때문에 또 다른 경제위기가 발발하자 많은 나라들은 전쟁으로 돌파구를 찾거나 전쟁에 대비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전쟁을 겪었다.
“러시아도 있었지만 결국 미중전쟁도 있었고, 그러다가 한반도까지. 다 알잖아.”
중국은 공산당 주석의 욕심과 지도층의 기만이 결탁해서 대만을 공격했다. 이에 미국도 중국과 전쟁을 시작했고, 한국과 일본도 미국, 대만을 지원했다. 한편 눈길을 피한 북한 또한 전쟁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한미연합군은 이에 선제타격으로 답했다.
“그래도 나중에 기록하지 않을까요?”
“글쎄. 지하 벙커 아니면 어렵지.”
잠시 침묵. 성연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아래를 바라봤다. 생존자는 몇이나 될까. 살아도 다 같은 운명인데. 결국 그날이 오면 다들 끝이야.
“하긴 어렵겠네요…. 거기서도 모를 거고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 잘 가고!”
성연이 자리를 떠나자 해진은 칠판을 바라봤다. 머리 아프지만 역시 3차 대전 내용을 넣어야 했어. 그래야 반복이 없을 테니.
“오늘은 중요한 소식이 있다.”
해군기지 회의실은 앞에 단상과 빛이 비추는 큰 스크린이 있었고, 그 뒤로 의자들이 많았다. 그곳은 작은 마을 사람들 전부가 앉을 만큼 큰 강당 같았다. 각 의자 오른쪽에는 접을 수 있느 탁자가 달렸고, 스크린은 극장 화면만큼 컸다. 천장 조명도 은은한 빛을 내서 눈부시지 않았다. 이 강당은 원래 강릉투어호텔 거였다. 호텔은 해군을 위해 시설 일부를 기지로 쓰도록 배려했는데, 해군기지가 없었던 강릉에서는 크나큰 도움이었다. 다들 서로에게 감사했고 그 누구도 이기적으로 굴지 않았다.
함장은 단상에 서서 불을 끄고 나머지 49명의 승조원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 6시 45분경 인천에서 구조요청이 왔다.”
다들 눈이 벌어지고 입을 벌렸다. 핵맞았잖아? 거기서?
“생존자 찾았다고?”
“와, 진짜?”
“어떻게 찾았대?”
“다 죽은 거 아니었나?”
“자, 조용! 집중해라.”
함장의 말에 다들 조용해졌다. 함장이 넘긴 화면에는 ‘구조 요청 신호 발견’이라는 문구와 함께 인천 해수욕장의 위치가 나온 PPT가 비췄다.
“핵공격을 당한 인천 해수욕장에서 메시지가 왔다. 생존자가 있으니 구조해달라는 내용이야.”
승조원 박우진은 엄지손톱을 깨물며 지켜봤다. 화면을 넘기자, ‘작전명: 「달을 향한 외침」(Crying for the Moon)’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그 밑에는 ‘방호복을 입은 승조원을 에코6로 1명 보낼 예정,’ ‘1시간 안으로 귀환’ 등의 문구도 적혔다.
“물론 인천도 방사능 낙진으로 심하게 오염됐지만, 혹시나 있을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작전을 실행한다. 다행히 바닷가 가까이라서 1명만 보낼 거고. 지원자 있나?”
승조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치만 봤다. 오염지대로 가라고? 솔직히 생존자는 없을 게 거의 뻔한데. 도대체 누가 가? 그 친구 말고.
“소위 박우진! 제가 하겠습니다!”
우진 혼자 손을 들자, 함장은 미소 지었다. 역시 우진이야. 근데 괜찮을까? 일단 물어보자.
“박우진 소위. 지난번에 이어서 또 공훈을 남길 거야?”
“아닙니다. 그냥 의무를 다하고자 합니다.”
“알겠다. 다른 지원자는?”
잠시 침묵.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좋아. 그러면 우진을 보내서 생존자를 수색하겠다. 이상!”
함장은 발표를 마치고 불을 켰다. 장병들은 바깥 자리부터 한 명씩 옆으로 걸어나갔다.
대학 카페에 사람들이 꽉 찼다. 전쟁이 났어도 여전히 화목했고, 달콤쌉사름한 원두 냄새가 누구든 기분을 가라앉게 했다. 진상이나 목소리만 큰 사람, 훈수 드는 사람은 없었다. 카페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모두의 인심만큼은 머나먼 서쪽 끝 유럽까지 닿을 정도였다. 그런 인심만큼 깊고 진했던 나무 테이블 역시 친절한 옆집 아주머니처럼 포근했다. 손님은 대부분 과제하러 온 대학생이었지만 일부는 열기를 피하러 온 시민들이었다. 전쟁 이후 날씨가 생각보다 더워져서 다들 시원한 커피 한잔 정도는 필요했다.
여기서 우진과 성연은 마주 본 채 앉았다. 옆에서 정미래가 미소 지었다. 그는 둘을 서로 소개했고, 오늘 첫 소개팅도 잡았다.
“자 그럼, 둘이 잘해 봐. 잘 되면 좋겠다. 알았지?”
“네, 선배님.”
“네, 중위님!”
“그럼 안녕!”
미래는 자리를 떠났다. 우진과 성연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성연은 생각했다. 얼굴 괜찮네. 건강하고. 제복 잘 어울린다. 근데 뭐부터 말할까? 아!
“그래서, 우진님이 핵공격을 막으셨다고요?”
그는 쑥스러워 아래를 보고 미소 지었다.
“아, 네. 미래 중위님 덕분이죠.”
“와, 대단하세요! 저였으면 못했을 거예요. 혹시 뭐 좋아하세요?”
“아, 저요? 일단 아이스 아메리카노 좋아하고요.”
그의 컵을 툭 쳤다.
“그리고 고기요.”
“무슨 고기 좋아하세요? 같이 말해볼까요?”
잠시 침묵. 하나, 둘 셋!
“소고기!”
동시에 말하고 서로 웃었다. 와, 실화냐? 딱 들어맞네!
“그러면 저도 물어볼게요.”
우진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살짝 몸을 숙였다.
“네네.”
“취미가 뭐예요?”
“아, 저는 자전거 타기요! 그 다음엔 여행!”
“어? 저도 여행 좋아해요! 어디 어디 가볼까요?”
“음…일단 아무 데나 잘 가요. 안목해변도 좋고, 조용한 허난설헌? 아무튼 그런 곳도 좋아요.”
“저도 아무 데나 잘 가요. 아니면 요 앞에 대도호부관아인가? 아니면 경포호수? 그런 데는 어때요?”
“좋아요! 특히 친구나 썸 타는 분이면 더 좋죠.”
서로 웃었다. 진짜 잘 통한다!
“공통점이 많네요. 저희는.”
“그러게요.”
“아 근데 저, 3일 뒤에 임무가 있거든요.”
그녀는 미소를 풀었다. 그러고 보니 군인이시지. 임무가 있으실 거야.
“무슨 임무요?”
“아, 생존자 수색인데….”
잠시 침묵. 생존자들은 여기뿐인데. 어디 멀리 가시나? 아니면 가까운가?
“어디로 가시는데요?”
“인천이요. 구조요청이 와서요.”
서로 어색하게 다른 곳을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괜히 소개팅했나? 죽으러 가시나? 그러면 안 되는데. 또 혼자가 되는 걸까.
“아 그러셨군요. 깊이 들어가세요?”
“아뇨, 바닷가 바로 앞이요. 얼마 안 가요. 딴 곳에서도 해봤으니까 걱정 마세요.”
“네. 근데 이거, 말씀하셔도 돼요?”
“뭐, 어차피 다 알게 되실 거예요. 곧 뉴스로 나가요.”
그녀는 잠시 얼굴을 찡그리고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인천은 끝났잖아. 거기 누가 있다고 가신대? 아냐, 인사는 드리자. 잘 돌아오실 지도 모르니.
“알겠어요. 조심해서 갖다오셔요.”
초저녁이 되자 데스티니 술집에서 해군 장병들과 강릉 시민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집 안에는 노란빛이 비추며 은은한 분위기를 냈다. 곳곳에선 달달한 맥주 냄새, 시큼한 와인 냄새가 배었고, 평생 독실한 목사조차도 한잔하자면 껌벅 넘어갈 만큼 시원하게 마셨다. 손님들은 이왕 죽으면 마시고 죽자는 생각으로 마시는 거 같았다. 그래도 술주정을 하거나 진상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사장이 꽤 엄격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다들 정해진 때를 기다리는 건 매한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손님인 시민2와 시민3이 서로 얘기하다가 종업원을 불렀다.
“와인이 몇 병 있죠?”
“100병이요.”
“꽤 있네요.”
시민3이 놀랐다. 반밖에 없을 거 같았는데.
“아냐, 별로 안 남았어.”
시민2가 고개를 저었다.
“왜?”
“저 죄송한데 바빠서 그만 가볼게요.”
“네네, 얼른 가보셔요.”
종업원이 떠나자, 시민2가 말했다.
“어차피 낙진이 오니까 다들 부어라 마셔라 할 거 아냐.”
“그러네. 근데 지금 거주민이 몇 명이지?”
“전쟁 직전이 19만 명, 젊은 애들이랑 예비군 끌고 갔을 때 한 13만 명. 피난민까지 합치면 15만 명 정도.”
“그럼 부족하겠다.”
둘은 한잔 마시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진짜 많이 왔네. 근데 다 죽는다니 영 아니야.
“그래도 조치를 잘했어. 먹을 거 마실 거 좀만 부족했어봐.”
시민2였다.
“맞아, 맞아. 일단 바닷가라 생선도 잡히고, 농사도 하고, 비축 식량도 많고….”
잠시 침묵.
“아, 그나저나 방사능 낙진 온다며. 갈 곳도 없는데…어떡하냐.”
“그러게. 일본도 지옥 됐다던데. 북한이랑 러시아도.”
“해군 잠수함 하나 남은 걸로 이주하면 안 되나? 저 멀리 호주라든가.”
“못해, 못해. 연료가 부족해. 핵 맞지 않은 곳까지 못 가잖아.”
“야. 그렇겠다. 생존자도 다 못 태우고.”
시민3은 한숨을 쉬고 시민2를 봤다.
“야, 너 근데 여기 왔을 때 생각나냐?”
시민2였다.
“어, 생각나. 왜?”
“그때 말이야…”
시민2는 잠시 전쟁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정부에서 마련한 임시 피난민 구호소에 왔다. 피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자, 중상을 입은 사람, 맨발로 온 사람, 피부가 약간 타버린 사람 등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앞으로 걸어가보니 저 오른쪽 아이는 울고 있었고, 앞 사람들은 말싸움을 했다. 거기서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가보니 병원 소독약 냄새, 피 냄새, 땀 냄새 등이 코를 찔러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라던데. A섹터 13번. 앞에서 군인들과 의료진이 환자와 시신을 옮기며 걸어왔다. 얼굴은 덮었고 죽은 지 얼마 안 돼서 썩는 냄새는 없었지만, 여전히 보기가 힘들었다.
“민석아! 길민석! 어디야?”
시민2는 ‘수도권/인천’이라는 현수막을 보고 그쪽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10명 정도. 생각보다 적었다. 오기도 전에 죽었거나, 멀어서 못 왔거나. 그래도 여기인데. 한 번 여쭤보자.
시민2는 의료진에게 다가가자 시민3을 발견했다. 시민3은 의료진 앞에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머리 스타일과 복장으로 알 수 있었다.
“어? 창호야! 하창호!”
시민3은 양해를 구하고 일어났다. 둘은 서로 안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이렇게 온 것도 기적이야, 기적!
“다행이야, 다행!”
“와줘서 고맙다, 야!”
시민2는 시민3을 발끝까지 훑어봤다. 전부 다 멀쩡한가?
“다친 데는?”
“없어.”
“다행이다. 근데 식구분들은?”
시민3은 울상을 지으며 목소리가 떨렸다. 손으로 찡그린 얼굴을 가리며 눈물이 나오려 했다.
“늦었어.”
“왜? 무슨 일인데?”
“11시 49분에 나갔어. 빵집으로.”
“헐. 왜?”
“그때 빵집에 카드 두고 와서 갔는데…늦었어.”
결국 시민3은 눈물을 흘렸다. 그냥 내일 가자고 하는 건데. 다음에 찾을 수도 있었는데.
“내 카드였는데…. 차라리 내가 갔어야 했어. 왜 하필!”
시민2는 그를 안아줬다. 그가 자신의 가슴 속에서 울자, 등을 토닥였다.
“그래, 인마. 마음 아프겠다. 울 거면 울어도 돼.”
시민3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아프지만 얘 없었으면 더 아팠을 거야.
“맞아. 그랬지.”
시민2는 자신의 잔을 들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남아있어.”
시민3도 그의 잔을 들자, 둘은 건배했다.
“맞아. 끝까지 품위 잃지 말고 살아야…”
카운터로 다가간 함장은 잠시 승조원들을 돌아보고, 카운터 직원(이하 카운터)을 바라봤다. 그는 미소 지으며 카드를 냈다.
“저희 승조원들 한턱 내겠습니다.”
카운터는 손을 내밀었다.
“네, 할인 적용해서 17만원이에요. 카드 주세요.”
그녀는 결제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모니터에 ‘결제 불가’라는 문구만 보였다.
“이 카드 결제가 안 되네요.”
“네? 잠깐만요.”
그는 카드를 유심히 봤다. 곤란한데. 왜 안 되지?
“아, 이 나라사랑카드는 이제 안 되겠네요. 여기가 곧 국방부라…. 그럼 현금으로 내겠습니다.”
그는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기 시작했다. 2만, 4만, 6만…10만? 이거밖에 없어? 함장은 한숨을 쉬었다.
“아, 죄송하지만 돈이 없네요. 어떡하죠?”
“어, 잠깐만요. 사장님!”
그녀는 사장을 데리고 왔다. 사장은 함장에게 미소 지으며 다가갔다. 믿음직하신 함장님께 무슨 문제가 있으시길래?
“무슨 일이야?”
“돈이 부족하시대요. 어떡하죠?”
사장은 살짝 모니터를 보고 함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17만 원 나왔네.
“죄송한데 함장님 얼마 있으신가요?”
“10만 원입니다. 현금으로요.”
어디 보자. 함장님 10만 원, 금액은 17만 원. 부족하네. 근데 다들 잘 내시던데. 아, 아니다. 이거 다 받으면 안 돼. 차라리 그게 도리야.
“음…괜찮습니다. 그냥 반값만 주세요.”
“아니, 돈 안 받으십니까? 그럼 나중에 드릴 테니 각서라도…”
“아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사장은 양손과 고개를 저었다.
“핵미사일 막으셨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사장은 이게 그나마 드릴 수 있는 선물이니까 드리고 싶었다. 죄송해요, 함장님. 저로선 이거뿐이네요.
그는 카운터에게 고개를 돌렸다. 급여는 줘야지.
“시급은 내 꺼 깎아서 줄 테니 걱정 마.”
사장이 미소 지었다. 데스티니에서 일하는 종업원과 카운터는 그에게 정말 소중했다. 전쟁 전부터 성실히 근무해 왔고, 가족도 잃은 그가 절망하지 않게 도와준 자식 같은 애들이니까. 아직 자세한 인생사는 말 못했지만….
“네. 감사합니다.”
카운터는 함장에게 지폐를 받아서 지폐 수납구를 열었다. 총 9만 원. 5천 원 드려야지. 아, 잠깐. 할 말은 하자.
그녀는 수납구를 닫기 전 지폐 몇 장을 꺼냈다.
“함장님, 괜찮아요! 얘네도 곧 휴지조각이에요.”
그녀는 꺼낸 지폐를 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밤 10시였다. 점호를 마친 승조원들은 기지에서 잘 준비를 했다. 대부분 침상에 누웠거나 불을 끌 때까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다 “소등!”이라고 외치면 자야 했다. 이번 소등 당번이 된 우진은 불을 꺼야 했다. 그는 할 일을 마치고 불을 끄려 전등 스위치 앞에 서 있었다.
“소등해요?”
“어, 소등해.”
“소등!”
“소등!”
미래의 말을 들은 우진은 불을 끄고 침상에 와서 누웠다. 그는 옆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봤다. 3일 뒤 인천이네. 신호는 왔는데. 생존자가 있을까? 아니면 아무도 없을까. 지난번처럼 한 명도 없으면 어떡해? 그럼 헛수고잖아. 애초에 가는 게 맞나?
시간이 꽤 지나갔지만, 우진은 여전히 뒤척였다. 그는 옆 침상의 미래에게 말했다.
“주무세요?”
“아니, 왜?”
“잠이 안 옵니다.”
“또 왜?”
“생존자 때문입니다.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미래는 하품하고 왼쪽 위를 쳐다봤다. 생존자…. 머리 아픈데. 뭐라고 할까. 지난번 얘기는 하지 말자. 그땐 진짜…아니다. 일단 재워야지.
“얼른 자. 수색하려면.”
잠시 침묵. 그래. 빨리 자야지.
“네. 안녕히 주무십시오.”
“어, 좋은 꿈 꿔.”
우진은 뒤척였다. 잠 안 오는데. 양이나 세어 볼까. 양 하나, 둘, 셋, 넷, 다섯…열,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전장이 된 바다였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적들은 새까맣게 무리 지어 왔다. 하늘에서도, 바다에서도, 그 밑에서도 적들 천지였다. 하늘은 비행기와 미사일, 총알이 빗발쳤다. 가장 빠른 전투기도 아이가 건드린 풍선처럼 펑 터졌고, 가장 커다란 미사일도 총알세례에 크레파스처럼 바스라졌다. 바다도 그랬다. 아군 함대와 적 함대에서 연기가 솟았고, 각자의 전우를 지키기 위해 상대를 죽였다. 어떤 배는 두 동강 나 침몰했고, 또 어떤 배는 불붙은 곳을 끄고자 했다. 한편 바다 밑은 이름 없는 전사들의 공동묘지였다. 막 침몰하던 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군인, 이미 죽은 서로의 전우들, 여기저기서 터지던 기뢰, 그리고 잠수함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때 ‘오메가1’ 부호를 받은 우진의 잠수함은 적과 교전 중이었다. 목표물인 적 함대는 미사일을 쏘며 아군을 공격했다. 벌써 우리 함대 8척 중 5척이 피격돼 침몰했고, 1척은 큰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적 함대는 쥐떼마냥 끊임없이 왔다.
우진은 통신병으로서 크게 손상된 아군 함정과 연락을 취했다.
“여긴 오메가1. 오메가2, 응답 바란다.”
“여긴 오메가2. 평형수 쪽 물이 계속 샌다.”
“알았다. 배는 얼마나 기울었나?”
“오메가2, 현재 7도가량 기울었는데, 엔진실 쪽도 피격됐다. 네, 함장님…네? 네! 여기는 오메가2. 배를 버리라는 함장님 지시다. 함을 버리고 체크 포인트 델타에서 오메가1을…”
순간 치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렸다. 완전히 침몰했다.
“오메가2? 오메가2! 응답하라. 오메가2 응답하라!”
우진은 계기판을 주먹으로 계속 내리쳤다. 또 전우를 잃었다. 그게 너무 원망스러웠고 적들을 다 죽일 수도 없었으니까.
“씨발, 또야! 또! 또!”
왜, 왜 왜! 난 아무것도 못 해!
“박 준위, 진정해, 진정!”
함장이 말하자 그만뒀다. 또 이성을 잃었다.
“네, 죄송합니다.”
“박 준위, 구조요청 보내. 오메가2 피격 위치 좌표랑!”
맞아. 내 임무. 빨리 하자.
그는 사령부와 연결해서 통신을 시작했다.
“사령부, 사령부 나와라! 여기는 오메가…”
폭풍우 치는 밤이었다. 구조함이 파도치는 바다를 서치라이트로 비췄다. 우진과 승조원1은 수면으로 나온 잠수함 갑판에서 오메가2 함정의 생존자들을 기다렸다. 잠수함 옆에는 해난구조전대가 수색하고 있었다. 구조대는 최악의 환경에서도 목숨 걸고 활동했다. 대원들은 무인 탐사기, 구조 잠수정과 함께 교대로 잠수하며 수색하고 있었다. 정말 믿을 만한 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였고 벌써 대원 1명이 순직했다. 그들도 사람이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교전은 몇 시간이나 전에 끝났기에 실종자 발생도 피할 수 없었다.
우진은 입술을 깨물며 긴장했다. 나올 때 됐는데. 역시 안 되나?
순간 대원 하나가 물 밖으로 나왔다. 승조원1은 그에게 말했다.
“찾았습니까?”
“아뇨! 못 봤습니다!”
우진, 잠수함 난간을 꽉 붙잡았다. 역시나!
“아, 또야!”
우진은 울상을 지으며 바다 밑을 봤다. 장병들이 저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니. 차라리 내가 갔어야 할까? 김정태 준위, 백구민 함장님, 나민준 병장…
순간 구조함에서 승조원이 뛰어왔다. 그는 확성기를 들고 말했다.
“고 중위님! 박 준위님!”
“네, 왜요?”
“철수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제 더 못 찾는대요!”
우진은 눈물을 흘렸다. 아, 오메가2! 오메가5! 다시는 못 보는구나.
“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안 되겠습니까! 제발…”
“정말 죄송합니다. 근데 날씨가 이래서 안 될 것 같습니다! 사령부에서 사망자 더 나오면 안 된대요!”
우진은 울었다. 승조원1은 우진을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도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물에서 나온 대원이었다.
“알겠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죠….”
승조원1이었다. 우진은 눈을 돌려 시신이 들어 있는 사체포를 보고 절규했다. 대체 왜? 왜 하필 너희야!
“미안해…! 너무 미안해!”
우진은 깨버렸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숨이 가빠졌다. 숨을 내쉬려 해도 쉴 수 없었다. 다른 승조원들도 잠에서 깨어나 소란스러웠다. 그는 한 손으로 가슴을 쥐며, 온 힘을 다해 말했다.
“중위님! 중위…”
누군가 불을 켰고, 우진이 바닥에 쓰러지자 승조원들이 몰려와서 “우진아, 괜찮아?” “우진아, 정신 차려!”라고 말했다. 미래는 검은 비닐봉지를 가져와서 우진에게 왔다. 그는 우진의 몸을 반쯤 일으켰다.
“우진아, 우진아! 나야, 나! 보여?”
그는 여전히 숨을 잘 내쉬지 못했다. 모든 게 뿌옇고 희미하게 들렸다. 또 의식을 잃을 거 같았다. 하지만 앞에 있는 분은 아마 정 중위님. 대답하자.
“아, 네 중위님…네!”
미래는 비닐봉지를 우진의 입에 댔다. 비닐봉지가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했다.
“우진아! 숨 쉬어, 숨! 하나 하면 마시고, 둘 하면 내쉬어!”
우진은 끄덕였다.
“자, 하나! 둘! 하나! 둘!”
우진은 온 힘을 다해 숨을 쉬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천천히 주위가 선명해지고, 목소리도 또렷이 들렸다. 아 역시. 정 중위님이야. 잠시 후 그는 안정하며 숨을 쉬었다. 정 중위와 다른 이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진아, 관등성명.”
“소위, 박우진.”
“이제 좀 괜찮아?”
“네, 네. 괜찮아요.”
그는 콜록거린다.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려서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하필 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저 기범아. 따뜻한 물 한 잔만 떠줘.”
“어 잠깐만.”
승조원1이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 우진은 호호 불면서 조금씩 마셨다. 앗 뜨뜨뜨! 뜨거워.
“그래, 옳지. 잘 마신다.”
“허억, 허억…감사합니다!”
다 마신 우진은 컵을 구기고 내려놨다. 그는 승조원들을 돌아보고 미래를 쳐다봤다.
“좀 나아졌습니다.”
“많이 떨리는구나, 너.”
“네…너무 떨립니다.”
“그래, 그래.”
우진은 바닥으로 눈을 돌렸다. 이러면 안 돼. 바다에서 죽은 전우들에게 떳떳하려면. 꼭 찾아야 해.
그는 다시 미래를 봤다.
“인천, 거기가 마지막 희망입니다. 꼭 가야 해요. 반드시 생존자도…” 콜록거린다. “있어야 하고요!”
“그래. 있으면 좋겠다.”
“만약에 없으면… 없으면 어떡합니까?”
우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잠시 침묵.
“그건…그때 가서 보자.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근데 저 화장실 좀 쓰겠습니다.”
“그래, 도와줄게.”
미래는 우진을 일으키자 잘 일어났다. 다른 승조원들도 그들을 따라갔다. 밖에서는 새소리가 들리며 날이 서서히 밝기 시작했다.
이틀 후, 오늘의 피폭량/허용치는 59mSv/100mSv였다.
잠수함이 정박해 있었고 그 앞에는 「아직 시간은 남아있습니다」, 「달을 향한 외침」 등의 현수막이 걸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현수막과 잠수함에 달린 태극기, 해군기가 펄럭거렸다. 현수막 밑에서는 군인들과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은 함께 웃으며 군인들과 얘기했다. 거기엔 강릉시 공무원들도 나와 있었고 군인들을 환대했다.
한편 함장은 사람들과 사진을 찍은 뒤, 강릉 시장과 악수했다.
“그래도 저희는 끝까지 찾을 겁니다.”
“네네, 알죠. 혹시 뭐 저희가 빠뜨린 건 없을까요? 예비용 이온 배터리 같은 거요.”
“없습니다. 다 있어요. 감사합니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시장은 경례했다.
“네, 함장님. 충성!”
“충성!”
함장은 등을 돌렸다. 하나같이 응원하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전쟁 전만 해도 다들 이 정도로 환영하지 않았지만, 다른 모든 게 무너진 그제야 우리의 진가를 알아본 거 같아 살짝 씁쓸한 미소이기도 했다.
“전 인원, 출항해!”
함장이었다. 우진도 성연과 얘기를 마치고 몸을 돌렸다.
“이제 가볼게요. 나중에 봬요!”
“네!”
그는 등을 돌리고 잠수함으로 향했다. 이윽고 잠수함이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출항하고, 서서히 물에 잠겼다.
한밤중에도 잠수함은 바닷속에서 항해했다. 잠수함 주위에는 피격되었거나 침몰한 배들이 많았다. 하지만 생존자를 발견해서 지체할 수 없었다. 하루빨리 구출해야 한다는 함장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지휘실에서 계속 지휘하려 했다. 하지만 그 헌신에 감동한 다른 승조원들이 극구 말렸다. 따라서 곧 자야만 했고, 승조원들은 교대로 함을 조종했다.
우진도 마침 교대할 때가 되어 침상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 함장실을 지날 때 생존자 위치가 궁금했다. 얼마나 깊이 들어갈까? 몇 명일까? 아니, 살아 있긴 해?
생각이 많았던 그는 살짝 열린 함장실에 노크했다.
“계십니까?”
함장이 문을 열었다.
“들어와.”
함장실에 들어간 우진은 여전한 그의 헌신을 확신했다. 함장실 안에는 생존자와 전쟁, 잠수함 관련 메모지가 잔뜩 붙었다. 함장은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고, 그 옆에 가족사진, 해군 장병과 찍은 사진이 달렸다.
“소위, 박우진! 함장님, 질문 있습니다.”
“해봐.”
“구조요청 위치가 어디입니까?”
함장은 노트북을 돌려서 보여줬다.
“오차는 있겠지만 GPS를 추적한 결과 인천 해변 에코6 지역이야.”
함장은 펜으로 인천 해변의 지도에 별표를 가리켰다. 거리가 애매했지만 갈 순 있었고, 건물 사이에 있는 빈 곳에 진원지가 있었다.
“잘 보여?”
“네, 잘 보입니다. 메시지는요?”
“잠시만.”
함장은 노트북에서 ‘구조요청’ 폴더를 열고 ‘인천’이라고 적힌 파일을 열자, 메시지 내용과 진원지 좌표가 나왔다. 메시지는 ‘여긴 인천 해변이에요. 제발 도와주세요. 곧 핵공격이래요. 저희 가족 도와주세요. 가족은 4명이고 강아지 한 마리 있어요.’라고 나왔고, 좌표는 ‘인천광역시, 동경 124°36', 북위 36°55'. 에코6 지역’이라고 적혔다.
“일단 방사선 측정하고 보낼 거니까 걱정 말고.”
“아닙니다. 다만 저번처럼 아무도 없는 게 아니면 됩니다.”
잠시 침묵. 함장은 지난번 생존자 수색을 떠올렸다. 생존자는 없었고, 혼자 갔다 온 우진도 절규했다. 그나마 미래가 있어서 잊었지만, 이번에도 없다면…
“이미 알겠지만 이번에도 없을지 몰라. 그래도 만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후회해. 너무 늦어. 박 소위!”
“네!”
“생존자가 없어도 낙담 말고 최선을 다해!”
“네!”
“답변이 됐으면 돌아가서 자.”
“네!”
우진은 경례하고 침상으로 갔다. 잠시 후 함장은 책상에 앉아 타자 치기 시작했다. 기록하자. 끝까지. 세상에 남은 군대가 우리뿐이라도 끝까지 복무한다. 나는 함장이야.
‘항해 일지. 2027년 8월 16일. 21시 54분. 현재 부산 앞바다에서 잠항하며 인천으로 간다. 이제 막…’
순간 고개를 자꾸 푹푹 숙였다. 졸려. 이거만 하자, 이거만. 아, 지금. 지금은 안 돼. 지금…
함장은 꿈을 꾸며 전쟁을 회상했다. 삼 일 전 우진이 꿨던 전투 상황이었다. 우리 잠수함 오메가1은 적 함대와 싸웠다. 벌써 8척 중 6척이 침몰했고, 남은 건 우리와 오메가5뿐이었다. 전투기와 함대 증원이 왔지만 적의 강력한 구축함 때문에 여전히 밀렸다. 다행히 수뢰과가 적 구축함을 찾는 데 성공했다. 내부 지휘실은 경보가 울렸고, 공격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다들 적함을 포착해도 격침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 배는 적함 중 가장 컸고, 몇 번이나 공격당했지만 여전히 버텨서였다. 추가 증원이 더 된다면 격침할 수도 있을 텐데.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존나 큰 저 쇳덩이를 어떻게 죽여?
“오메가1. 적 구축함 발견! 전방 10시 방향! 방위 290, 침로 050. 함수각 L20, 거리 3000. 속력 19노트.”
통신과에서도 아군 함대와 교신 중이었다.
“오메가5, 상황 보고 바란다!”
“여긴 오메가5, 당장 공격하라! 벌써 아군 전투기 2대가 피격됐고, 나머지 함대도 버티기 힘들다! 최전방엔 오메가1과 오메가5 2척뿐이다!”
“알았다. 증원병력은?”
“도착 시간 7분. 빨리 쏴!”
“알았다. 수뢰과, 어뢰 장전!”
잠수함은 적을 조준하고 어뢰 공격을 준비했다. 잠수함 앞에 달린 벽이 열리며 어뢰가 조금 튀어나왔다.
“수뢰과, 조준 완료! 호밍 중어뢰 장전!”
“표적방위 300, 침로 58. 함수각 L17, 거리 2795. 속력 24노트!”
“발사!”
“발사!”
어뢰가 발사되어 적을 향해 나아갔다. 갈수록 속도가 빨라졌고, 어뢰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경로가 보였다.
“어뢰 속력 30노트! 32노트, 35노트, 39노트. 적함 도달 10초 전! 8, 7, 6…”
다들 긴장하며 어뢰의 카메라를 지켜봤다. 적함은 이를 피하려고 급격히 방향을 꺾었지만, 어뢰는 점점 다가갔다.
“제발 맞아라. 제발.”
“3, 2, 1. 도달!”
어뢰는 적함을 공격하자 물기둥이 솟았다. 곧 불이 붙은 적함은 크게 폭발하며 두동강 나 가라앉고 있었다.
“명중, 명중! 탄약고 유폭!”
“좋았어!”
“이야!”
다들 함성을 질렀다. 함장이 잠망경으로 격침되는 적함을 확대하자, 적 승조원들은 바다로 뛰어들며 가까스로 탈출하고 있었다. 어떤 놈은 불이 붙은 채, 어떤 놈은 구명정을 타고, 또 어떤 놈은 탈출하려다 작은 폭발에 산화했다. 적이지만 보기 불쾌했다. 쟤들도 가족이 있을 건데. 아냐, 조금만 늦었어도 우리가 저렇게 됐어. 그치만…
“자자, 다들 집중해, 집중! 빨리 다음 표적 조준해! 다음은…”
적들이 핵을 쏜 날. 자정이 되자 홀로 남은 잠수함은 강릉 앞바다에 나와 있었다. 지휘실 스크린에 핵미사일이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고, 그 밑에 ‘미사일 도달: 앞으로 10:10:06’이라는 카운트다운 숫자가 있었다. 수도권에는 너무 많이 와서 다 잡을 수조차 없었고, 원래 잠수함 대부분은 대공 미사일이 없었다. 하지만 오메가1은 시범용으로 잠대공 미사일을 싣고 있어서 시도는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강릉으로 오는 건 단 2기. 남은 시간 9분 52초. 이미 포술과가 한 기 격추해서 딴 거만 잡으면 된다.
“적 미사일 포착! 대응탄 발사 준비! 방향 지시 대기 중!”
함장은 결정해야 했다. 어디냐? 12시 방향은 아냐. 그러면 빗나가. 3시도 아니고. 1시 아니면 2시. 근데 어느 쪽이냐? 1시? 2시? 1시면 격추 확률 45.1프로. 2시는 44.9프로. 1시는 대응탄 경로가 가파라서 놓칠지도 몰라. 2시도 좀 비스듬하고. 1시면 직격 확률이 높다. 2시는 미사일 중간에 닿으니 살짝 위험하다. 그래, 어쩔 수 없어.
“1시 방향! 1시 방향!”
함장이 스크린에 손가락질하자, 우진이 달려왔다. 그는 땀에 흠뻑 젖은 채 함장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함장님, 안 됩니다! 철회하시고 2시 방향 해주십시오!”
“왜, 우진아. 왜? 왜 2시야?”
함장은 스크린과 우진을 번갈아 가며 봤다. 2시야, 1시야? 2시? 1시? 어디냐고! 우진이 계속하자 승조원1은 그의 멱살을 잡고 삿대질했다.
“야, 박우진! 너 미쳤냐? 대응탄 한 발뿐인데 어디서 지랄이야?”
그 역시 땀 흘리며 초조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게 장교도 아닌 게 깝치고 있어. 거의 다 좆됐는데, 명령 불복종이냐?”
이에 미래가 승조원1과 우진을 떨어뜨려 놓았다.
“기범아, 고기범! 진정해! 아무리 그래도…”
“야, 정미래!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씨발 대응탄 한 발뿐인데 장난 까냐?”
“다들 조용히 해! 좀!”
함장이었다.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머릿속엔 자꾸 강릉과 잠수함이 핵공격으로 날아갔고, 또 다른 기회조차 없다는 게 너무나 몸을 떨게 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눈을 감았다가 심호흡하며 떴다. 진정해, 진정. 난 함장이야. 장병만이 아닌 시민들 목숨도 달렸어. 그러니 일단 묻자.
“정미래, 박우진. 다시 말해봐. 아직 안 쐈어. 어디로 쏴?”
“2…2시 방향입니다.”
우진이었다. 함장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이유는?”
“미사일 속도가 계속 빨라져서, 1시 방향이면 놓칩니다. 대응탄 예상 경로도 너무 짧고요. 차라리 2시로 쏴서 미사일 허리를 끊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미래도 함장에게 말했다.
“함장님, 박 준위 말을 믿어주십시오. 제 군 생활을 전부 걸고, 박 준위는 단 한 번도, 한 번도 군대에서 오판한 적 없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재고해 주십시오.”
“알았다. 포술장, 대응탄 2시로 발사해.”
“네, 2시로 발사!”
잠수함 윗부분에서 대응탄이 연기를 내며 솟았다. 금세 방향을 잡고 핵미사일로 날아갔다.
“표적 도달까지 10초. 9, 8, 7…”
다들 긴장하며 스크린을 쳐다봤다. 스크린에는 대응탄에 달린 카메라 화면 핵미사일 도달 시간이 나왔다. 핵미사일이 가까워지자, 승조원들은 이를 서로 번갈아 가며 봤다.
“4, 3, 2…”
함장의 눈에 카메라 화면이 비췄다. 눈 주위에 송골송골 땀이 흘렀다. 제발, 맞아라. 제발!
“도달!”
카메라 화면이 꺼졌다. 대응탄은 핵미사일과 부딪혔다. 미사일은 불붙어 산산조각이 났다. 찢어진 조각들은 서서히 하늘에서 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서…성공. 요격 성공! 요격 성공!”
다들 환호하며 박수치며 서로를 안아줬다. 너무 환호해서 욕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 흥분감을 주체하지 못해 몸을 들썩이거나 쿵쿵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야, 우진아. 아까 멱살 잡고 똥군기 잡아서 미안해.”
승조원1이었다. 우진은 살짝 미소 지었고, 옆의 미래도 웃었다.
“괜찮습니다. 고 중위님도 워낙 흥분하셔서 그러셨던 거 압니다.”
“그래, 맞아. 기범이 너도 급했으니까.”
“그래, 고맙다. 다음부턴 절대 안 그럴게.”
“네, 이제부터 안 그러시면 됩니다.”
우진과 미래는 승조원1과 악수했다. 곧 함장이 다가와 우진에게 말했다.
“우진아, 잘했다! 공으로 1계급 특진 해줄게. 요격 성공이니까 빨리 강릉시랑 사령부 연결해!”
“네, 감사합니다!”
우진은 통신기로 뛰어가서 앉아 헤드셋을 켜고 강릉과 연결했다.
“네! 여긴 오메가1. 강릉시 응답 바랍니다. 네. 지금 막…”
새벽, 북한 신포시 앞바다였다. 바닷속에는 침몰한 군함들이 많았고, 잠수함 혼자 살아 있었다. 어둡고 눈물 나는 공동묘지에서 홀로 생존한 잠수함은 핵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신포를 타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 그러나 지난 몇십 분 동안 계속 핵공격이 있어서 사령부가 하나라도 무사한지 불확실했다. 지휘실 스크린에 ‘줄루5’라는 문구와 신포의 위성사진이 보였다. 사진 옆 화면에는 ‘공격 좌표: 북위 40°00′, 동경 128°06′’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여기는 오메가1. 사령부, 수신 바란다. 줄루5가 정확한 타격 지점인가?”
응답이 없었다. 치직거리는 잡음만 들렸다. 지난 10여 분 동안 아무 응답이 없었다. 정말 다 날아갔나? 우리만 살았나?
“사령부, 여긴 오메가1. 줄루5가 타격 지점인가?”
포술과는 신포를 미사일로 조준하며 공격 대기 중이었다. 다들 몸과 마음의 고향을 잃은 터라 언제든 싸울 수 있었다. 또 잃을 건 목숨뿐. 내일 아침은 지옥에서 먹을 각오였다.
“여기는 포술과. 신포시 줄루5, 조준 완료! 명령만 주십시오!”
함장은 한 손을 들어 말렸다.
“잠깐만! 12분째 사령부 응답이 없는데…. 쓸데없이 전력 소모할 순 없어.”
잠시 침묵. 서로 눈치 보며 망설였다. 명령이니 따르는 게 맞나? 근데 응답이 없잖아. 명령 불복종은 안 되는데. 근데 아군이 먼저 타격했으면? 그럼 할 필요가 없어.
미래가 말했다.
“그럼 측정기 하나 보내면 어떻습니까?”
“좋아, 하나 보내!”
잠수함 위에서 방사선 측정기가 발사되어 올라갔다. 끝부분에 케이블이 달린 측정기는 콜라병처럼 생겼다.
“도달까지 7초, 6초. 5, 4, 3, 2, 1, 0!”
측정기가 딸깍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공포스런 ‘끼이이이이이-’ 하며 나는 소리는 정말 꿈에 나올 거 같은 끔찍한 소리였다. 소리 자체도 듣기 싫고 그 상황도 싫었다.
“신포시 방사선 수치는 현재 170Gy! 핵공격을 당했습니다!”
함장은 고민했다. 명령대로면 타격해야 한다. 하지만 사령부 응답도 없고, 잔존하는 적도 고려해야 한다. 아군 미사일 공장도 다 날아갔고. 그래. 전력을 허비할 순 없다.
“그럼 공격할 필요 없다. 항해과, 기지로 복귀해!”
“네!”
항해과가 잠수함을 서서히 돌렸다. 그 커다란 배가 방향을 조금씩 틀자, 다들 ‘아,’하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승조원1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도 높고 모든 걸 잃은 그는 반드시 복수하고 싶었다. 다들 그러리라.
그는 함장에게 다가가 양팔을 조금 내밀고 말했다.
“신포시 타격은 사령부 명령 아닙니까? 아직 보복도 제대로 못했는데요. 왜 복귀합니까?”
함장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그를 봤다.
“이제 소용없어! 적과 사령부는 이미 전멸했으니까…”
함장은 깨어나 숨을 헐떡였다. 또야, 또. 그 기억. 그는 주위를 돌아보며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연락 끊긴 가족, 전우들의 전사, 우리만 살아남은 그때. 왜 우리뿐일까. 강릉은 살았지만 다른 곳은 죽었거나 죽어간다. 아직 먹고 잘 수 있어도 낙진은 계속 다가온다. 피난민 구호소는? 강릉에 왔지만 금세 죽은 사람들? 다들 고통받다 죽었다. 그럼 우리도 곧 그렇게? 참으로 매정한…
똑똑. 누군가 노크했다.
“함장님?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함장이 정신을 차렸다. 누구야? 누군데 점호 시간 후로….
“간다.”
그는 살짝 비틀거리며 문으로 향했고, 문을 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중위, 정미래.”
미래가 경례하자 함장은 웃었다.
“아, 정 중위. 그냥 꿈이야, 꿈. 그때 꿈. 괜찮아.”
함장이 경례를 푸니 그도 풀었다.
“큰 소리가 들려서 와봤습니다. 이상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미래야. 고맙다. 이제 괜찮으니까 가서 자.”
“네.”
미래가 돌아가자 함장은 등을 돌렸다. 다행이다. 아직은 아냐. 혼자는. 후임이랑 시민들이 남았지.
함장은 노트북을 끄고 침상으로 가서 앉았다. 아직 괜찮아. 잠을 못 자서 그런 거야. 그는 곧 군화를 벗고 침상에 누웠다. 어둠 속에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으며 계속 생각했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